
프라이부르크 동네 비교 ① 분위기 편 — 어디서 살까
헤르데른·비레·슈튈링거·리텐바일러·하슬라흐·바우반, 프라이부르크 주요 동네 6곳의 분위기를 살아본 사람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비교한다. 동네 비교 시리즈 1편.
프라이부르크에 온다고 치자. 그럼 어디서 살아야 할까? 이게 의외로 큰 문제다.
서울로 치면 구(區) 하나보다 작은 도시인데, 동네마다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옆 동네로 자전거 10분 거리인데도 "여기 사람들 분위기가 다르네" 싶은 순간이 온다. 빌라촌의 조용함, 자동차 없는 생태마을의 떠들썩함, 학생들이 바글대는 술집 거리, 정원 딸린 단독주택 단지... 한 도시 안에 다 있다.
그래서 동네 이야기를 한 편으로 몰아넣는 대신, 여러 편으로 나눠서 카테고리별로 비교해보려 한다. 분위기는 분위기끼리, 교통은 교통끼리, 집값은 집값끼리. 그래야 "나는 조용한 게 좋은데 돈은 없고, 음대는 가까웠으면 좋겠다" 같은 본인 조건에 맞춰 고를 수 있으니까.
오늘은 그 첫 편, 동네 분위기다. 같은 프라이부르크라도 동네마다 공기가 어떻게 다른지, 살면서 보고 들은 걸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본다. (집값이나 교통은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룬다. 오늘은 "느낌" 이야기다.)
다룰 동네는 여섯 곳. 헤르데른(Herdern), 비레(Wiehre), 슈튈링거(Stühlinger), 바우반(Vauban), 리텐바일러(Littenweiler), 하슬라흐(Haslach). 프라이부르크에 처음 오는 사람이 한 번쯤 후보에 올리는 동네들이다.

헤르데른 (Herdern) — 조용한 부자 동네, 프라이부르크의 발코니
먼저 헤르데른. 시내 북동쪽, 언덕을 등지고 앉은 동네다.
한마디로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우아하고 조용한 부자 동네다. 원래는 포도밭이 있던 작은 와인 마을이었는데, 1457년에 시에 편입됐고, 19세기 들어 돈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빌라촌이 됐다. 지금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넓은 가로수길을 따라 유겐트슈틸(아르누보) 양식의 오래된 빌라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시간이 좀 느리게 가는 느낌이 든다.
동네 자체가 균질하지 않고 몇 개의 결로 나뉜다.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개인 도로에 수영장까지 딸린 진짜 비싼 집들이 있고("프라이부르크에서 이만큼 으리으리하게 사는 데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구역이다), 성 우르반 교회(St. Urban) 주변엔 작은 가게들이 모인 옛 마을 중심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거리 이름이 죄다 음악가 이름이라 "음악가 거리(Musikerviertel)"라 불리는 구역도 있고, 서쪽엔 관공서와 대학 시설이 모인 구역도 있다.
재밌는 건, 헤르데른 주민들의 동네 만족도가 프라이부르크에서 거의 최상위라는 거다. 지역 신문이 동네별 전화 설문을 했을 때, 헤르데른 사람들이 "내 동네 살기 어때?"라는 질문에 매긴 점수가 조사한 여러 동네 중 1등이었다. 한 토박이 주민은 "다른 데로 이사 간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분위기를 결정짓는 또 하나는 녹지다. 동네 동쪽이 로스코프(Rosskopf) 산자락으로 이어져서, 조금만 올라가면 프라이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누군가는 헤르데른을 "프라이부르크의 발코니"라고 부른다. 대학 식물원도 이 동네에 있고, 오래된 큰 나무들이 많다. 시내 운하(Stadtkanal)가 흐르는 일부 구역은 "작은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정리하면 — 조용하고, 녹지 많고, 품위 있고, 좀 나이 든 동네.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걸 원하면 여긴 좀 심심할 수 있다. 반대로 차분하게 살고 싶고 시내까지 멀지 않은 곳을 원한다면, 헤르데른의 공기는 꽤 매력적이다.
비레 (Wiehre) — 프라이부르크에서 제일 인기 있는 동네
다음은 비레. 시내 남쪽, 드라이잠 강을 건너면 바로 나오는 동네다.
비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다. 프라이부르크 사람한테 "어디 살면 좋아?"라고 물으면 높은 확률로 비레가 나온다. 1825년부터 시의 일부였던 유서 깊은 동네인데(문헌상 기록은 1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반에 루르 지방과 남바덴의 부유한 사람들이 몰려와 대부르주아 주거지로 키웠다. 그 결과가 지금의 비레다 — 빌라, 타운하우스, 천장 높고 방 큰 옛 아파트들이 조용한 거리에 늘어서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 색깔이 좀 뚜렷하다. 의사, 교사, 법조인, 심리학자 같은 학자·전문직 중산층이 많다. 68세대(독일의 학생운동 세대)가 나이 들어 정착한 동네이기도 해서, 진보적이고 지적이고 "녹색"(환경 중시) 색채가 강하다. 동네를 보존하는 데 열심이라 "프라이부르크의 녹색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고 노인 동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젊은 가족, 학생 셰어하우스(WG), 노인이 한데 섞여 묘하게 활기가 있다.
분위기를 만드는 디테일도 많다. 1899년에 지은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요하네스 교회는 워낙 커서 "비레돔(비레의 대성당)"이라 불린다. 옛 비레 기차역 건물은 지금 시립 영화관(Kommunales Kino)으로 쓰인다 — 동네에 이런 문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비레의 성격을 말해준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농산물 직거래장(Bauernmarkt)도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일방통행이 많아 차가 쌩쌩 다니지 않고, 곳곳에 정원과 앞뜰이 있어서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푸르다.
위치도 좋다. 드라이잠 강, 슈테른발트(Sternwald) 숲, 로레토베르크(Lorettoberg) 언덕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연이 가깝고, 그러면서도 시내까지 자전거로 금방이다. 한마디로 "있을 거 다 있고 예쁘고 조용한" 동네다.
대신, 그만큼 비싸다. 그리고 인기가 많아서 매물 경쟁이 치열하다. (이 얘기는 집값 편에서 자세히.) 분위기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동네인데, 바로 그래서 모두가 원하고, 그래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슈튈링거 (Stühlinger) — 학생과 이민자가 섞인, 가장 도시다운 동네
비레가 "올드머니"라면, 슈튈링거는 정반대다.
슈튈링거는 중앙역 바로 뒤, 그러니까 "기차역 뒤편(hinterm Bahnhof)"에 있는 동네다. 원래 늪지와 풀밭이었던 곳을 19세기 후반 철길 따라 개발한 곳이라, 역사도 비레만큼 길지 않고 건물도 더 빽빽하다. 비레랑 건축 양식이 비슷한 데가 있는데, 훨씬 더 촘촘하다고 보면 된다.
여기 분위기는 한마디로 젊고, 다국적이고, 좀 거칠고, 힙하다. 약 1만 8천 명이 사는 큰 동네인데, 대학·중앙역·시내가 다 가까워서 학생이 정말 많다. 거기에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섞이면서 독특한 색이 만들어졌다. 특히 알트-슈튈링거(Alt-Stühlinger) 구역은 개성 있는 가게, 컬트적인 술집, 다양한 국적이 어우러진 "씬(Szene) 동네"로 통한다. 예술가 분위기와 서브컬처가 거리에 깔려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 에쉬홀츠 거리(Eschholzstraße)엔 술집과 맛집이 줄지어 있어서 학생들 저녁 모임 장소로 유명하다. 비건 레스토랑, 대안적인 카페, 젊은 디자이너들이 옷을 파는 가게 같은 게 자연스럽게 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제일 큰 공연장 중 하나인 E-베르크(E-Werk)가 여기 있어서 연극이나 콘서트를 보러 오는 사람도 많다. 에쉬홀츠 공원(Eschholzpark)엔 클라스 올덴버그가 만든 거대한 빨간 정원 호스 조형물이 떡하니 놓여 있는데, 이게 또 동네 상징처럼 됐다. 여름이면 파란색 슈튈링거 다리(Wiwilibrücke, 일명 "블루 브릿지")에서 노을 보는 학생들로 가득 찬다.
대학병원(Uniklinik)과 역사주의 양식의 헤르츠-예수 교회(Herz-Jesu-Kirche, 청록색 쌍둥이 탑이 인상적이다)도 이 동네에 있다.
분위기를 한 줄로 정리하면 —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도시답고, 가장 젊고, 가장 다양한 동네." 조용한 걸 원하는 사람한테는 안 맞을 수 있다. 반대로 활기와 사람 냄새, 밤에 나가 놀 곳을 원한다면 슈튈링거만 한 데가 없다.
바우반 (Vauban) — 자동차 없는 생태 마을, 세계가 견학 오는 동네
바우반은 좀 특별하다. 프라이부르크의 다른 동네들과 아예 결이 다르다.
남쪽에 있는 이 동네는 원래 프랑스군 막사 자리였다. 1990년대에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 그 부지를 통째로 생태 주거 단지로 다시 지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젊은 동네(2007년에야 독립 구역이 됐다)이자, 프라이부르크의 "녹색 도시"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린 간판 동네다.
여기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은 "자동차"다. 정확히는 자동차가 거의 없다는 것. 약 5,600명이 사는데, 가구의 40% 넘게가 자기 차가 없다. 차를 가진 사람도 동네 외곽의 공용 주차빌딩(Quartiersgarage)에 세워두기로 다 같이 합의했다. 그래서 동네 안 길에는 차가 거의 안 다닌다. 1,000명당 자동차 대수가 독일 평균은 520대, 프라이부르크 평균은 495대인데, 바우반은 191대다. 절반도 안 된다.
그래서 거리 풍경이 진짜 다르다. 대부분의 길이 "놀이 도로(Spielstraße)"라, 아이들이 길에서 분필로 그림 그리고, 외발자전거 타고, 탁구대를 그냥 길바닥에 펴놓고 친다. (진짜로 길에 탁구대를 갖다 놓는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 본 거, 음료수 박스, 목재상에서 산 각목까지 — 다 자전거에 싣고 다닌다. 차가 필요하면 동네 곳곳의 카셰어링 차(약 45대, 상당수가 전기차)를 쓴다.
주민 색깔도 뚜렷하다. 환경 의식 높고, 공동체 지향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패시브하우스(초저에너지 주택)가 의무이고, 일부는 아예 태양광 주택 단지로 지었다. 주차장 대신 텃밭을 만든 "반델가르텐(WandelGarten)" 같은 공동 도시농업 프로젝트도 있다. 워낙 독특해서 이탈리아·프랑스·일본 등에서 매주 견학단이 온다. 매년 약 1만 명의 전문가가 "친환경 도시가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러 찾아온다.
솔직히 빛만 있는 건 아니다. 초창기의 이상주의적 주민들이 나이 들고, 자녀도 크고, 소득도 높아지면서 동네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원래 "예외적인 경우에만 잠깐" 차를 집 앞에 대기로 했는데, 요즘은 SUV가 좀 오래 서 있기도 하다. ("어차피 이따 또 나갈 건데 뭐.") 처음의 그 강했던 공동체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릴 때를 위한 놀이터는 많이 지었는데, 정작 커가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스케이트장 같은)은 빠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분위기를 한마디로 하면 — "차 없고, 아이들 뛰놀고, 친환경에 진심인, 세계가 견학 오는 동네." 이런 가치에 끌린다면 바우반은 독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곳이다.
리텐바일러 (Littenweiler) — 동쪽 끝, 자연과 학생의 조용한 동네
리텐바일러는 프라이부르크 동쪽 끝에 있다.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 드라이잠 강과 흑림(슈바르츠발트)에 가까운 동네다.
분위기는 목가적이고, 조용하고, 학생이 많은 동네다. 1914년에 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프라이부르크 성문 밖의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언덕 비탈에 빌라들이 있던 그 시절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거기에 다층 아파트가 섞이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옆 동네인 에브넷(Ebnet), 카펠(Kappel), 발트제(Waldsee), 비레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경계가 모호할 정도다.
이 동네 성격을 결정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대학(Pädagogische Hochschule, PH). PH가 여기 있어서 학생이 많고, 학생 동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연. 드라이잠 계곡의 자연이 바로 곁에 있고, 호숫가 수영장(Strandbad)도 있다. 통과 차량이 거의 없어서 동네 중심은 아주 조용하다.
생활 풍경도 차분하다. 가톨릭 성 바르바라 교회(St.-Barbara-Kirche)가 동네 중심에 있고, 시민회관으로 바뀐 옛 교회, 개신교 부활교회가 있다. 안뜰(하인리히-하이네 거리나 로젠스틸 부지)은 아이들을 위해 잘 꾸며져 있어서 — 녹지, 작은 축구장, 공공 놀이터가 있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 음악 조기교육을 하는 음악협회(Musikverein)에 자부심을 갖는다. 동네 자체에 음악적인 결이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북적임보다 평온을 택한 동네." 시내 중심에서 좀 멀고 동쪽 끝이라 약간 외곽 느낌은 있다.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 가깝고, 학생도 많아 너무 적적하지도 않다. 음대생 입장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는데 — 그건 교통 편에서 따로 풀겠다. (미리 살짝만: 위치가 생각보다 음대랑 궁합이 좋다.)
하슬라흐 (Haslach) — 가성비 좋은 서민 동네, "정원 도시"의 두 얼굴
마지막으로 하슬라흐. 남서쪽에 있는 동네다.
하슬라흐는 위 동네들과는 또 다른 결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서민적이고, 저렴하고, 평가가 갈리는 동네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동네였고, "그렇게 좋은 평판은 아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프라이부르크는 워낙 전반적인 수준이 높은 도시라, 여기서 "평판이 별로"라는 게 다른 도시의 험한 동네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냥 비레나 헤르데른 같은 고급 동네와 비교했을 때 평범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하슬라흐엔 의외의 매력이 있다. 바로 "정원 도시(Gartenstadt)" 구역이다. 영국의 에버니저 하워드가 제창한 "전원도시" 모델을 본떠 만든 곳으로, 앞뜰 딸린 단독·연립주택이 녹지에 둘러싸여 있다. 이 구역은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그래서 가족 거주지로 인기가 꽤 있다. "노동자 동네"라는 선입견과 "예쁜 정원 도시"라는 현실이 한 동네에 공존하는 셈이다.
학생들한테도 인기다. 조용하고 집값이 싸서, 혼자 원룸을 얻거나 셰어하우스(WG)를 차리기 좋다. 슈튈링거와 시내(알트슈타트)로 가는 연결도 빠른 편이다. 현지인들이 "옥센브루그(Ochsebrugg)"라고 부르는 다리(정식 명칭은 옥센 다리/에쉬홀츠 다리)를 건너면 금방이다. 대학이랑 시내 밤문화 접근성이 좋아서 학생들이 좋아한다.
한마디로 "화려하진 않아도 살기 괜찮고,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에 친절한 동네." 분위기로 폼 잡는 동네는 아니지만, 정원 도시 구역의 조용함과 가성비를 생각하면 충분히 후보에 올릴 만하다.
그래서, 분위기로 줄 세우면
오늘은 "느낌"만 봤으니, 느낌으로만 거칠게 정리해본다.
- 조용하고 품위 있는 걸 원한다 → 헤르데른, 비레
- 예쁘고 인기 많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 → 비레
- 젊고 활기차고 밤에 놀 데가 많았으면 → 슈튈링거
- 친환경·공동체·차 없는 삶에 끌린다 → 바우반
- 조용한데 너무 외롭진 않고, 자연이 가까웠으면 → 리텐바일러
- 저렴하면서 조용한 동네면 된다 → 하슬라흐
물론 분위기가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집값이 안 맞으면 못 살고, 매일 다녀야 할 곳(음대든 대학이든)이 너무 멀면 지친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교통을, 그다음엔 집값과 방 구하기를 같은 방식으로 비교해보려 한다. 분위기 위에 그 두 개를 겹쳐 보면, 아마 "내 동네"가 슬슬 보이기 시작할 거다.
다음 편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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